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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16일 목요일

애플TV+, 슬로 호시스.. 별 볼일 없는 직장인의 고분분투

애플TV+의 슬로 호시스(Slow Horses) 시즌 2가 시작되었다. 그저 ‘게리 올드만’이 주연한다는 이유로 시즌 1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가 그 흥미로움에 빠쪄 며칠에 걸쳐 이어 보게 되었다. 이 드라마는 분명 첩보물 혹은 스릴러 드라마가 분명하지만, 내겐 ‘미생’과 같은 직장인 드라마로 보였다. 이른바 좋은(사명감도 있고 볼마도 느낄만한) 직장이지만 자신은 주류에 밀려나 곧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운명에 처해진 이가 주인공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이런 저런 이유로 업무에서 밀려났지만 직접 해고할 수 없으니 알아서 나가라고 한적한 골방에 몰아 넣었지만 여전히 골치거리다. 나락에 떨어진 직장인은 다시 제대로 된 업무에 복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하루하루 살아간다.

자위하자면 골방에 밀려났다고 무능력하거나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러한 작은 이유도 직장 내 경쟁에서는 심각한 결격 사유가 될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주요한 정부기관이라면 더욱 그럴 수 있다. 일반 기업도 더 심하면 심하지 다르지 않다. 사람 모여 사는 곳은 다 똑같다. 그러나 상황에 따른 한 개인의 피해나 좌절은 서로 입장에서 비교할 수 없다. 이미 좌절을 겪은 이에게 별 일 아닌 실수도 심대한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결국 한 개인의 삶은 의지나 바램과 무관하게 상황에 휘둘리게 될 수 밖에 없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 사건과 관련된 내용은 크게 주요하지 않았다. 밀려난 이들의 활약이 돈도 환경도 열악한 상황에서 뛰어야 얼마나 뛸 수 있겠나. 결국 남이 하지 못한 일을 완수했다고 하더라도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즌 2는 시작할 리가 없다. 현실도 그렇다. 그저 자기 만족만이 오늘 삶을 살아가는 희망이 되고, 다시 삶은 같은 곳에서 같은 처지에서 이어진다.

그럼에도 이들이 강제로 내쳐지지 않는 것은 나름 의미와 가치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는 덕분일 것이다. 이들의 수장에게서 그런 풍채가 그대로 느껴진다. 기관이나 기업에서 종종 만나는 얼굴이다. 오늘의 모든 것을 이룸에 혁혁한 공헌을 했지만 그 과실의 몫은 옆에서 눈치보고 아부하던 이의 차지이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에서는 그런 처지의 인재가 너무 많다. 그럼에도 조직이, 회사가 그리고 사회가 굴러가는 건 이들이 여전히 자신만의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그 역할을 하고 있는 덕분이다.

시작할 때에는 웃음올 보게 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답답함이 가득하다. 첩보물이나 스릴러로서 핵심 사건이 얼마나 주요한 지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사건 사실 자체만으로는 매우 위중한 것이 분명하지만, 주인공들에겐 그저 하나의 사건이다. 운좋게 남들 보다 먼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했으니 열심히 다릴 수 밖에 없다. 솔직히 이들도 큰 기대를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그 댓가는 꽤나 심각하다. 정신적, 육체적 피해는 물론 심지어 삶과 바꿀 수 밖에 없기도 하다.

21세기 오늘, 아마도 이 땅은 단군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예전 같다면 이 정도 대내외적 여파라면 나라가 이미 망해도 수 없이 망했을 법 한데, 우리가 알 지 못하는 지난 시절 대한민국의 포텐셜이 엄청나게 커진 것이 사실인 것 같다. 근거 없이 선진국이라고 말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얼마나 견딜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최후 희망을 가지는 것은 슬로우 호시스에서 등장하면 찌질한 이들 같은 존재감 없는 이 땅의 많은 위대한 일상 덕분이 분명하다.

PS. 이런 드라마를 보고도 세상의 모순과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면, 결국 자신도 그 몫의 일부를 감당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