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5일 월요일

산더미 같은 업무 파고 속 GTD 시스템 #2

등산이나 달리기를 할때 가끔 신발 안 발에 무언가 이물감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아픈 경우도 있지만 무시할만 하면 계속 오르거나 뛰게 된다. 하지만 무언가에 대한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멈추고 조치할 수도 있지만 지금 상황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무시하게 된다. 혹은 특정 경로를 정해두고 도착하면 대응하기로 계획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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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 쏟아지는 업무 가운데에서도 그런 경우가 많다. 별 일 아니지만-하고자 하면 어렵지 않게 대응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주요하지 않으니 계속 미루게 된다. 정작 시간이 나도 대응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산을 오르다 주저앉자 등산화를 풀어 바닥을 정리하고 다시 자세와 장비를 정비하는 것이 매우 귀찮다. 더욱이 오르막을 올려 한숨을 배뿌으며 허덕이는 상황에서 쉽지 않는 결정이다.

어렵고 긴 시간에 걸친 일을 함에 있어 자신의 정신적, 유체적 피곤함을 자극하는 건 대개 사소한-특히 업무적 시각에서 개인적인-일이다. 정말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할만한 일이 많다. 간단한 일이란 건 지금 진행하고 있는 거창한 일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지 일단 시작하면 사실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미루게 된다. 미루더라도 신경이 쓰이지만 별일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심함을 일관하고자 하지만 그럼에도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그 일을 시작하게 된다. 더 이상 얼굴 찌뿌리는 자신을 놔두기 힘들기 때문이다. 예상한 바대로 간단히 처리될 수 있다. 안도의 한숨이 쉬어지고 다시 일에 전념하고자 한다. 하지만 몸과 마음의 동력이 방금 전과 같지 않음을 알게 된다. 눈을 감고 몸을 젖치고.. 이게 뭔가라는 생각에 빠진다. 산더미 같은 일이 쏟아짐을 알고 있지만 몸을 움직이고 싶지 않다.

그러나 곧 일을 마친 부하 직원의 보고나 상대방의 요청 그리고 사장의 부름을 받게 되면서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업무 모드로 힘겹게 전환된다. 다시 일상은 반복된다.

GTD 시스템은 이런 하찮은 일을 소중하게 관리하는 시스템라고 본다. 일을 소중함이나 중요함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할 수 있으니 하라고 한다. 가끔씩 정말 대단한 시스템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시스템을 닫는다. 결국 일상은 반복된다.

이야기 시작으로 되돌아가, 발 아래 거슬리던 작은 돌 조각을 버리고 신발을 다시 신을 때 그 해소감은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비교할 수 없는 안도감을 준다. 삶을 괴롭히는 건 큰 일이 아니라 작은 일이다. 그런 이유로 여전히 난 GTD 시스템을 신뢰하고 있다.

2022년 12월 1일 목요일

OmniFocus 3.14.3 업데이트

현재 OmniFocus 4의 베타 버전을 사용하는 가운데 OF 3.14의 업데이트가 진행되었다. 점점 iOS/iPadOS의 OF를 닮아가는 듯한 상황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최근 맥 사용 환경이 노트북 사용자 중심이라는 점에서 당연한 대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이후 OF 3.X의 업데이트는 거의 버그 해결 수준에서 지속되지 않을까 싶은데, 지난 OF2 인터페이스 변화 이후 나름의 큰 변화가 어떤 식으로 등장할지 모르겠다. 사실 지난 OF3의 업데이트는 macOS 업데이트 못지 않게 특별하지 수준으로 진행되어 왔다. 때문에 점점 OF3 업데이트 자체가 둔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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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경향은 Things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OF나 Things나 새로운 기능이라고 소개된 사안의 대부분은 macOS 업데이트에 추가된 기능의 활용 수준이다. 이전에도 이런 상황에 대한 적었지만 GTD 시스템 플랫폼 소프트웨어의 기능적 범주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 분명할 정도이다(뭐라도 작은 변화라는 면에서는 요즈음은 Things가 더 적극적이다).

OF의 등장으로 OmniGroup의 주력이 OmniOutliner에서 OF로 옮겨갔지만 이전의 감흥을 새롭게 만들지는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일상의 일이 복잡해지는 요즈음에 OF3가 GTD 시스템을 위해 최선의 플랫폼을 유지할 수 있을 지 기대하기 쉽지 않다.

2022년 11월 19일 토요일

산더미 같은 업무 파고 속 GTD 시스템 #1

지난 두어 달 최근까지 내 삶에서 이렇게 바쁜 날이 있어나 싶을 정도로 정신 없었다(다만 다행스럽게도 바쁨과 급함의 차이로 볼때 전자라는 할 수 있다). 아마도 내 평생 지금까지 마우스 클릭한 수 보다 지난 한달 간 클릭한 수가 더 많았을 것이다. 더불어 여러 예기치 못한 이유로 일들이 내외부적 사정으로 겹치고 겹치고 겹친 지경이다. 그런 상황에 관련된 각 당사자는 저마다 가장 바쁘고 힘들다고 하소연이니, 여러 프로젝트 간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가능한 계획된 일정과 성과로 귀결 뒤도록 해야 하니.. 정말 피곤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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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달 이상 하루 평균 수면 시간 한 손에 꼽을 수준이다. 간혹 깊은 잠에 빠져들면 알람 소리가 없다면 정해진 시간에 깨지 못했다. 게다가 예상했지만 집안의 큰 일까지 이어져 가족, 친지간에 대해-물론 드러내지는 않았지만-마음까지 편치 않은 심정이다.

이런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시간적 궁지로 몰리다 보니 GTD 등 어떤 관리 시스템 조차 필요치 않다.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모든 상황에 머리 속에 들어 앉아 있는 상황에서 쉴새 없이 여러 일을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특별한 대응 기준이 없음에도 자연스럽게도-현실적 이유에 따라-실행과 관리의 우선 순위가 정해지게 되었다. 가족 문제는 자연스럽게 뒤로 밀렸다. 사실 가족 일이란게 경조사나 건강상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당장 큰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물론 듣기 싫은 잔소리기 이어지기는 하지만, 소 귀에 경 읽기가 되어 가고 있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최소 한달은 이어질 것이다.

덕분에 정확하지 않지만 지난 몇 주간 OmniFocus를 열어본 기억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앞서 적은 것처럼 굳이 관리 체계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마치 몸이 현재 어떤 일을 해야하는 지 알고 있는 듯 했다. 사실 컴퓨터 앞에 앉아 맘 편히 웹 서핑할 여유 조차 없었다고 해도 과한 거짓은 아니다.

문제는 이런 생활이 지속되다 보니, 이른바 관리 체계에서 긴 시간을 두고 진행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죄다 계획이 무의미할 수준으로 지연되고 있는 이른바 관리 부재의 상태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자면 그런 프로젝트를 처음 계획한 시점의 기대와 달리 현실적으로 결국 밀릴만한 일이 밀리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진정 관리하고자 하는 일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계획한 대로 실행과 진행 여부를 정기적 점검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삶에서 그런-개인적 측면의-관리 대상이 얼마나 될까 싶은 가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중요하고 어렵다고 생각한 일이 다른 더 중요하고 어려운 일의 등장하면 우선 순위는 자연스럽게 밀리게 된다. 그러니 평소 고민했던 사안이 실상 고민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는 것은 한편으로 매우 긍정적이다.

돌이켜 볼때 이러한 일 대부분은 즉각적 실행으로 대응이 가능했다. 하지만 온갖 이유로 실행은 지연되고 그에 따른 고민과 후회를 가진 대상으로 관리 체계를 떠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보자면 갑작스런 일의 파고에 이런 일이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있다. 실행 되기도 하고 삭제 되기도 했다. 일단 실행하면 놀랍도록 단순한 일이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특히 사람과 직접 연결된 일이라면 더욱 그랬다. 괜한 마음으로 부담으로 지연되고 있던 일이 짧은 만남이나 통화로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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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일의 파고 속에서 급하게 처리하는 과정에서-걱정하고 고민했던 만큼과 달리-단순하게 해결되고 진행되기도 했다. 많은 일이 나 자신의 역할 외 다른 주변 상황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결과는 실행하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인정하게 되었다. 이런 바쁜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고 여전히 지연된 상태로 GTD의 지연 목록으로 머무르게 된다.

지난 한 달은 정말 일상의 여러 일에 대한 계획을 얼머나 스스로 신뢰할 수 있는 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 내 삶의 계획을 믿고 진행하기란 쉽지 않음을 인정한다.

2022년 8월 1일 월요일

하기 싫은 일, 못하는 일 그리고 할 수 없는 일

현재 GTD 시스템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항목 가운데 비중이 가장 큰 것은 분명 수 개월에 걸쳐 계속 지연되고 있는 일들이다. 그리고 지연의 원인이 되는 일들은 아마도 할 수 없는 일, 혹은 하기 싫은 일 하지만 결국 못하는(못하고 있는) 일이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GTD 시스템에서 지속적으로(장기간에 걸쳐) 미뤄지고 있는 일들은 대개 할 수 있지만(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연기되고 있는 일이라 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자면 이런 일들은 하기 싫은 일이나 못하는 일 즉 할 수 없는 일이랑 다를 바 없다. 즉 원인은 다르더라도 결과는 동일하다.

이러한 이유로 GTD 시스템을 신뢰성을 회복하고 실제적 활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장기간 지연되고 있는-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일들이 실제적으로 정말 할 수 있는 일인지를 냉정하게 평가해야만 한다. 앞서 말했듯 할 수 있는 일임에도 하고 있지 않고나 하기 싫거나 혹은 어떤 이유로든 못하고 있는 일이라면 결국 할 수 없을 일이다. 그런 일이라면 차라리 관리 시스템메서 삭제하는 것이 GTD 스타일 다운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장기간 관리가 필요한 대상이 있다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기약없이 머물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GTD 시스템의 관리 대상이라면-운용자에 따라 다르겠지만-대략 1년 정도를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그 이상이라면 GTD 시스템에서 관리되기는 어려운, 즉 일이라기 보다는 바램과 꿈의 대상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그런 결정이 쉽지 않다. 분명 버리거나 내려놓는 모든 일에는 크든 작든 미련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할 수 없고, 하기 싫고 그리고 못할 것 같지만 혹시나 쉽게 할 수 있는 계기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 내지는 바램으로 생명이 연장되고 있는 것이다.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GTD 시스템에서 관리되어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찾고 있을 지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그 일을 실행해보기 바란다. 그러면 너무나도 쉽게 그 실행 여부 그리고 실행 의지를 파악할 수 있다. 그 결과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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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D 시스템의-일반적으로 주간 단위의-관리 단계는 시스템에서 향후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는 이러한 항목을 제거하는 것이 주요하다. 주간 단위든 월간 단위든 스스로의 능력과 의지에 대한 솔직한 평가가 있다면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고, GTD 시스템은 실질적인 일 그리고 삶의 관리 도구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일말의 필요성이 있는 일이라면 어쩌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런 일이라면 쉼 없이 수집함으로-때마다 다른 모습과 표현으로-들어오게 될 것이 분명하다.

2022년 7월 23일 토요일

시간 부족, 혹은 일상의 혼란 ?

아마도 살면서 일상에서 가장 많이 생각하고 또 가장 많이 내뱉은 말이기도 하다. 또한 서로 간의 삶에서 가장 의미없지만 강력한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상당 부분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무섭기도 하다.

이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는 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주변에서 나 보다 어린 후배나 지인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한창 일하고 가족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시기였는데 안타깝게도 예기치 못한 운명과 마주했다. 그런 상황에 놓이면 대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를 알게 된다. 물론 실제 남은 시간은 알고 있는 것에 비해 훨씬 짧다는 것 역시 모르지 않는다. 몇 명을 떠나 보내고 난 후, 만일 내게 그런 시간이 주어졌다면 난 과연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언제나 자문한다.

최근 갑작스럽게 다시 코로나-19가 유행이다. 잠시 찾은 여유에 부린 만용의 댓가는 수치적으로 명확한 듯 하다. 더욱이 관리 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되다보니 확산은 불본듯 뻔한 것 같다. 만일 자신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 되었거나 혹은 가족이 확진되어 자체적 (놀랍게도 지금은 강제가 아니다) 감금 상태에 있다면, 주어진 시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짧게는 3일은 길게는 10일이라니, 누군가는 휴가라고 하고 또 다른 이는 고통의 시간이라고도 한다. 그러한 상황을 떠나 자신에게 온전히 일주일 시간이-느닷없이-주어졌다면 과연 그 시간을, 앞서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 그 상황에 대응되는 시간으로 활용하거나 혹은 누릴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아마 시간이 부족한 것이 언제나 불만인 자신에게-예정되었던 휴가나 휴일이 아닌-긴 혹은 짧지 않은 시간이 주어진다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것에 비해 정작 시도할 수 있는 혹은 시도해보고자 하는 일을 명확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자신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주어진 시간이다 보니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항상 기회를 생각하지만 그런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제대로 시간이 주어졌을 때 뭘 해야 할 지 사전에 정리하거나 계획해 두지 않은 탓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정적 그리고 현실적 이유로 생각해보자면, 기회가 주어졌을 때 하고자 했던 그리고 하고 싶어 했던 일들이 정작 기대한 만큼 주요하거나 가치가 있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즉 시간이 주어진다면 하고 싶은 내지는 해야 할 일이야 생각했던 일이 과연 그런 일인지를 먼저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어럽게 주어진 시간을 허무하게 선택과 고민만 반복하다가 흘러 보내던가 심지어는 무력감에 빠지게 될 위험이 있다.

앞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되는 순간에 대해 적었다. 안타깝지만 시간의 문제일 뿐 많은 이들에게 그런 경우가 다가오게 될 것이다. 새로운 계획이든 이미 오래전 생각하다가 미련이 가득한 계획이든 진정의 가치와 순위를 생각할 시간이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든..

2022년 7월 18일 월요일

OmniFocus 3.13.4 업데이트

이전 3.12가 업데이트 된 이후 거의 9개월만에 OmniFocus 3.13이 업데이트 되었다. OF 3.13에서는 Omni-Automation 환경에서 애플의 Voice Control을 사용하여 OF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되었다. 사실 이런 기능이 없다고 OF 운용에 불편함이 있었던 건 아니니 특별히 반길만한 사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 아직 애플의 음성 명령 인식 지원 목록에 한국어가 없다. 그리고 OF의 특성화 진행한다면 영어를 사용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 내 영어 발음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생각 보다는 OF 반응이 원할하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아이폰 같은 경우라면 몰라도 데스크탑이든 노트북이든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음성 명령으로 처리해야 할 상황이 실제 얼마나 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한편으로 아이폰이나 맥에서 Siri를 비롯한 음성 명령 관련 기능의 이용이 많다면 나름의 생산성 개선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보지만, 어차피 모든 기능을 음성으로 완전히 처리할 수 있는 시절이 오기까지는 그저 작은 관심의 대상 정도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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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기능 개선 사안 여기 Omni Automation과 관련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macOS 버전과 iOS(iPadOS) 등 운용 플랫폼과 무관하게 동일한 구조의 자동화 기능 처리가 추가되고 있는 듯 하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그 운용의 효용성을 찾지 못해 크게 관심이 없다. 반면 과연 어떤 예상하지 못한 기능이 만들어 질 수 있을 지 기대가 되기도 한다.

2022년 5월 27일 금요일

Mac 기반 GTD 프로그램 현황 2022

GTD이 소개된 지 20년 정도 지난 탓인지 관심이 예전만 못한 것 같다. GTD 시스템 외에도 여러 시간 관리 기법이나 자기 계발 이론들이 넘쳐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복잡한 현실에 비춰 명확하게 적용이 어려운 점도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이론은 쉽지만 적용이 만만치 않다. 때문에 쉽게 시작했다면 역시 쉽게 포기하는 경우도-주변의 사례로 보아-많은 것 같다.

특히 소프트웨어 기반의 GTD 운용은 그 기능적 단순함의 한계로 인해 상당 기간 기능의 추가나 확장이 답보 상태에 머물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도 관심이 지속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예로 GTD 시스템 용도의 스마트 폰 앱을 보면, 어떤 앱을 구성과 인터페이스가 유사하고,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일단 컴퓨터 시스템, 맥 환경에서 운용되고 있는 GTD 지원 어플리케이션의 현황을 정리해보았다. 몇몇은 여전히 선두에서 경쟁하고 있는 반면, 일부는 개발이 중단되었거나 현실적으로 업데이트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로 보인다. 최근 등장한 제품의 경우는 일반적 GTD 프로그램이라기 보다는 협업 관리 등에 더 관심을 두는 경향도 보인다.

선두권

  • OmniFocus(Omnigroup)
  • Things(Culturedcode)

OmniFocus와 Things, 두 프로그램은 비교되는 선명한 특징으로 구분되다보니 GTD 시스템으로서 어느 것이 우위에 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예전에는 Things에 비해 단연 OmniFocus가 우위에 있었지만, Things에서도 나름의 계층 구조가 지원되면서 선택의 더 어렵게 되었다. 오히려 OmnFocus가 업데이트에 비해 실제적 활용성은 다소 정체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특히 OmniFocus가 최신 macOS의 새로운 기능 우선 지원에 따라 구버전 macOS에서 OmniFocus 지원을 중단했기 때문에, Things는 상대적으로 구버전 macOS 지원이 상당히 넓은 편이기 때문에 성능 차이가 많은 시스템은 쓰는 경우 선택의 여지가 없다.

추격권

  • Pagico(NOTES 17)
  • Firetask(Gerald Aquila)

최근 가장 활발한 업데이트를 보여주고 있는 Pagico는 기능적인 면에서 다른 경쟁 제품에 비해 우위에 있다. 다만 기능이 너무 많다보니 GTD 시스템으로 범위를 넘어 모든 기능을 활용하기에 부담이 되기도 한다. 특히 SetApp 번들에 포함되어 있어 비용적 측면에서 상당히 효용성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FIretask는 상당한 기대를 가질듯 한 분위기로 등장했지만, 예상 보다 제한된 기능으로 실망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버전에서는 선두권 프로그램이나 Pagico에 근접하게 접근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 GTD 시스템에 집중된 측면에서라면 Pagico에 비해 가볍고 빠르다.

탈락권

  • The Hit List(Karelia)
  • Inbox(Midnightbeep)

한때 OmniFocus, Things와 함께 Mac을 위한 3대 GTD 프로그램으로 손꼽히던 The Hit Lists는-아직 판매는 되고 있지만-추가 개발이 중단된 듯 수년간 업데이트가 없다. 다만 기본 기능이 탄탄하게 만들어졌고, 최신 운영체제에서도 지원이 되기 때문에 GTD 시스템으로 사용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Inbox의 경우는 더 심해서 버전 2.0의 출시를 예고한 지 거의 10년은 지나지 않았나 싶은데 상황은 여전하다. 개발사에서는 다른 앱을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업은 지속하고 있는 것 같지만 The Hit List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Inbox에 대한 기대를 접은 지는 오래다.

2022년 2월 21일 월요일

핀볼 게임, 판단과 대응의 차이 ?

개인적으로 컴퓨터로 즐기는 게임은 꽤나 제한적인 그나마 짧게 자주 하는 것이 핀볼 게임이다. 어릴 적 놀이 동산이나 관광지 공원에 있던 오락실에 한두 정도의 핀볼 게임기가 있었다. 일부러 핀볼 게임을 하러 가진 않았지만 기회가 되어 근처를 들러게 되면 꼭 핀볼 게임을 해보고려 했다. 몇몇은 아직도 게임의 이름이 기억나는데 그 만큼 여러 핀볼 게임에 한이 맺힌 덕분이 아닐까 싶다.

핀볼 게임을 좋아했던 이유는 어릴 적 추억이기도 하지만 컴퓨터 기반의 디지털 게임이 아니라 무거운 공을 이용한 물리적 실제 게임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뭐랄까 플리퍼를 통해 손가락에 느껴지는 무게감 나아가 타격감이라고 할까 그런 것이 좋았다. 문제는 당시 게임장이나 오락실에서 핀볼 게임의 가격은 다른 오락에 비해 두 배 정도였다. 컴퓨터, 아케이드 게임이 한번에 50원이라면 100원, 게임이 100원이라면 핀볼은 200원이런 식이었다. 아마도 요즈음이라면 100원 동전 두 개가 아니라 500원 동전 두 개 내지는 네 개를 넣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최근 주변에서 핀볼 머신을 본 적이 없어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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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핀볼을 즐기고 있다. 그런데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핀볼 게임을 하면서 영원히 해결되지 않은 나 자신의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게임 도중 위기를 맞이할 때 쓰는 이른바 비밀의 도구가 있음에도 제때 사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핀볼 게임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플리퍼를 떠나 여러 목표물이나 다른 구조물에 부딪힌 후 되돌아 올 때 플리퍼 사이를 지나 빠지거나 혹은 양 쪽에 있는 아웃레인에 빠지려고 할때 한 손이나 양 손으로 본체를 때리거나 흔들어 공의 진행 방향을 살짝이라도 바꾸는 것이다. 물론 너무 세게 혹은 자주 연이어 기계를 흔들면 작동 불능 상태로 빠지거나 심하면 경고음을 울리면서 해당 회의 게임이 리셋된다.

이런 기능은 컴퓨터 기반의 핀볼 게임에도 당연히 적용되는데 대개 플리퍼에 해당되는 키보드의 왼쪽 아래 키 근처에 배치된다. 예로 왼쪽과 오른쪽 시프트 키가 각각 플리퍼의 역할을 하면, 그 아래나 옆에 있는 키 그리고 가운데 스페이스 바가 그 역할을 한다. 게임에 따라 다르지만 두세번 반복하면 게임이 중단되는 틸트(Tilt) 모드가 된다. 그러니 주어진 기능이긴 하지만 자주 사용해서도 사용할 수도 없는 기능이다.

하지만 유사시에 아주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으며 목표한 점수를 얻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가 될 수도 있다. 핀볼이란 것이 한번 흥이 붙으면 목표한-대개 보너스 볼-점수에 대부분은 챙길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위험한 순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완벽한 날이 된다.

문제는 그런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또한 사용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다짐하고 있음에도, 짧은 순간 그 기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기능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시간적으로 0.1~02 정도의 짧은 시간이 요구되기도 하고 멀리서 내려오는 공이라면 0.5초 정도의 시간에도 사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내 경험에 비춰 공이 지금 방향으로 내려오면 플리퍼를 지나치거나 양쪽 아웃레인으로 들어갈 것이 분명하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고, 그 순간이 지나면서 후회를 한다는 것이다. 시간적으로 보자면 0.2~0.3초 되려나 모르겠다. 키를 눌러야 할 상황과 눌리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상황 간의 시간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판단 및 실행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10번 있다면 1번도 시도를 못하지 않나 싶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는 이유는 일단, 핀볼 게임 자체에 너무 몰입하다보니 플리퍼 동작 외 다른 기능적 동작이 있다는 자체를 잠시 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경우 다음 게임에서는 의식적으로 유사시에 흔들기 기능을 사용해야지 다짐하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난 핀볼 게임을 하면서 머리로 생각한 행동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음을 확인한다. 비유하자면 사람들이 너무 무서운 나머지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심정과 같지 않나 싶다. 나아가 그런 상황이 곧 발생할 것임을 인지했고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있는 경우에도 머리와 손은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물론 이 모든 것인 게임을 하는 자세나 여러 주변에 기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상으로 돌아와서 생각할 떄, 사람을 마주하는 회의나 혹은 전화를 통한 이야기를 하면서 순간적으로 머리로는 생각과 판단을 했음에도 말로 나오지 않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 행동으로 보자면 복도를 걸어가다가 마주치지 말아야 할 상대방을 인지했음에도 결국 부딪히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스스로 아무 생각이 없었다면 상관없지만 순간적 판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응하지 못한다. 물론 실질적으로 아주 짧은 시간에 물리적 행동으로 대응이 가능할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시도 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간혹 급박한 상황에서 판단에 따른 순간적 대응으로 일이 잘되기도 했고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때문에 의식적으로 앞으로의 상황에서 즉각적 판단 그리고 필요한 행동을 하도록 스스로 마치 프로그래밍 하듯 다짐하지만 쉽지 않다. 그리고 그로 인한 여파는 앞서 언급했듯이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경우에 비해 더 심각한 자책의 후폭풍을 초래한다.

아마 나이가 들어가면서 머리로 생각한 대응이 손이나 발에 전달되는 시간이 점점 늦어져 그런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삶에서 굳이 그런 수준의 생각과 판단까지 필요한 것이냐는 상식적 의문이 정답인지도 모르겠다.

2022년 2월 6일 일요일

긴 쉼은 비용이며 업무 생산성의 장애물이다 ?

일상에서의 휴식은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쉬기 위해 일한다고들 하지 않나 싶다. 긴 연휴나 휴가는 물론 일상의 주말이 없었다면 지리한 삶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었을 지 의문이다. 하지만 길든 짧든 휴식을 위해 주어진 시간 동안 쉴 수 있는 여유를 가졌는 지는 의문이다. 더욱이 다시 찾아오는 일상의 부담으로 짧았던 기억은 곧 사라진다. 물론 다시 찾아 올 주말과 연휴를 기다리며 일상의 시간을 보낸다.

직장 생활 혹은 학업이나 다른-나름-규칙적 일상에서 항상 고민스러우면서도 흥미로운 것이 휴식의 시간을 보낸 후 다시금 일상을 시작할 때마다 밀려오는 정신적, 유첵적 부담이다. 대부분의 서민적 삶에서 휴식이나 휴가 그리고 휴일은 거의 비슷한 시기를 공유할 것이니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이들이 동시에 겪는 증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날 회장을 모시고 담소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 기업의 소유자이자 대주주인 회장이나 그 가족은 우리와 다른 일정을 살고 있었다. 과장해서 보자면 남들 쉴때 무언가를 하고 남들 일할 때 쉬는 경향을 보였다. 물론 기업에서 회장이 자주 쉰다는 것은 직장인 입장에서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덕분에 사장도 맘 편히 쉬는 것 같다. 당연히 사장이 쉰다고 직원들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장 얼굴 보지 않는 자체로 만족하지 않을까 한다.

회장은 주중에 관광지의 유명 호텔을 이용하면 예약도 수월하고 값도 훨씬 저렴하며 또한 사람도 없어 정말 편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왜 사람들이 주말에 몰려 다니는 지 모르겠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정말 모르는 것인지 일부러 그러는 지는 알 수 없지만, 내용적인 면에서 사실이다. 돈 많고 시간 많은 이들이 주중의 시간을 여유롭게 즐기는 반면, 나를 포함한 대부분은 주어진 휴식의 시간에 마저 경쟁을 해야 한다. 남들 다 쉬는 기간에는 어딜 가더라도 일상 보다 높은 비용이 발생하며, 숙박이든 식사든 상대적으로 부실하기도 하다. 그나마 그 부실함 마저도 차지하기도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시기 주차 전쟁이 가장 짜증스럽다. 비용적으로 보자면 주말이나 연휴때 비용은 주장이나 비수기 시즌에 비해 적게는 2 배 일상적으로 4 배 이상의 비용 차이가 난다. 당연히 가족의 수가 증가하면 비용도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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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니 애초 기대한 바와 달리 긴 휴식도 실제적 삶의 여유를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힘들더라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런 시간과 비용을 지출하고서도 쉼을 누리기 어렵다. 가족이 있으니 더더욱~.

쓸데 없는 이야기로 한참을 돌아 왔는데, 결국 쉰다는 것도 나름의 비용이 소요된다. 쉬는 시간의 비용이기도 하지만 쉼이 끝난 후 몰려오는 업무의 부담에 따른 비용은 더욱 부담이다. 마치 다른 세상에 있다가 현실로 돌아온 다음의 적응 시간이다. 한숨으로 시작하여 하품과 기지개로 순환된다. 이러한 과정은 평생에 걸쳐 겪기 마련이다.

그런 이유에서 쉰다는 것은 정말 일하는 것 이상의 기술적 요령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쉼에 대한 생각한 적이 없다. 손에서 일을 놓으면 쉰다고 생각했고, 하교나 퇴근 후 집에 오는 것으로 쉼에 들어간다 생각했다. 결국 두 과정의 이전에 따른 피곤함만이 가득하게 된다. 간혹 그런 구분에 따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쉼 자체를 제거하고 모든 삶을 업무의 영역으로 만드는 곳도 있다. 학교나 기업이 학생이나 직장인에게 강제로 쉼을 가지도록 할 수는 없다. 앞선 적은 바와 같이 쉼이란 스스로를 위한 스스로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쉼과 일을 명확하게 구분한다는 것 역시 좋은 선택은 아니다. 일을 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하루이틀이 아닌 일주일 정도 쉬게 되면 업무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제법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이라면 쉼의 시간과 상관없이 상황의 전환에 따른 업무 생산성이 영향을 받지 않도록 자신만의 시스템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

여러 방안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방법은-상당히 GTD 스타일 다운-일과 쉼의 명확한 구분이다. 다시 말해 일상 업무를 떠난 후에는 모든 것을 잊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시 업무로 돌아 갔을 때 즉시 일 할 수 있는 시스템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글로 간단히 적었지만 상당한 관리 능력이 요구된다. 이 시스템에서는 마찬가지로 주말 등에 업무를 수핼할 경우 완전히 업무적 일상으로 전환한다. 즉 달력의 날짜로 일과 쉼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업무와 쉼에 대한 결정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 특히 가족의 이해가 핵심이기도 하다. 강제로 독단적인 대응은 간단하지만 후폭풍이 심각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결정은 일이 아닌 쉼을 위한 과정의 하나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을 위해 쉼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쉼을 위해 일의 연속성과 생산성을 확보하려는 대응이다. 그러나 대부분 그 반대의 결과로 몰락하지 않나 싶다.

2022년 1월 17일 월요일

노력은 배신할 수도 있다 ?

우리가 젊은 친구나 학생들에게 자주하는 말이, 이른바 ‘어떤 노력도 결국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름의 삶을 경험한 바에 따르자면 노력은 언제나 배신한다. 그 이유는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이다. 이전 포스팅에서 열심히 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은 다르다고 적었다. 이것은 입시나 취업은 물론 직장 생활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직원은 없다. 최소한 그렇게 보이도록 열심히 노력한다.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노력과 다르다. 그럼에도 노력해야 하는 혹은 노력하는 척 하는 이유는 결과와 무관하게 노력하지 않는다는 자체로 상사로부터 욕 먹을 가능성을 줄이기 위함이다. 업무나 프로젝트가 기대한 바대로 되지 않았을 때 한번 제대로 욕 먹으면 될 것을 괜히 여유 부리다간 두고두고 욕 먹게 되기 때문이다. 농담 같지만 사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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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이 배신하는 이유는 무능이나 무지의 절대 영역이 단순히 열심히 노력하는 것으로 보완되는 부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굳이 한 인간의 지적 능력을 비하할 생각이나 이유는 없지만, 경쟁이라는 상황 특히 지적 학습을 필요로 하는 영역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정량적으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그 차이를 줄이기 위해 노력이라는-상대가 방심한 틈을 노린-대응을 할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 목표한 결과를 얻기 위해 주어진 상황에 처해진 자신의 역량을 정확하게 파악 혹은 인정을 하지 않으면 시간 낭비, 비용 낭비 그리고 체력 낭비가 되고 나아가 정신적 피해까지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주변의 젊은 친구들은 대부분 자기 주변에 만나는 이른바 직간접적 경쟁 대상에 비해 자신의 우월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자신감이 아닌-자만심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실제 그것은 자만심이라는 보다는 불안감과 초조함을 스스로 감추기 위한 자위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 학습의 자세나 노력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주변 특히 부모님이나 상사로 부터 압박에 시달리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의미없는 노력의 자체가 습관이 된다. 마치 책상에 앉아 있기만 하면 자신은 물론 주변으로부터 무언가를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도록 기능화되었다는 것이다.

업무에서는 이런 경우 상사나 선임이-굳이 실제 옆에 두고 상황을 관리하지 않더라도-다양한 관리 체계를 통하여 실제적 효용성있는 대응을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관리 체계에 갇힌 이들의 답답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직장인이라면 어차피 이런 체계에 갇혀 있으니 전체적 업무 진행을 위한 적응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 적응의 범위에서 각자 나름의 요령을 피우게 되고 직장 상사 역시 같은 경험을 한 바 마찬가지로 유연하게 관리 수준을 조절하게 된다. 간혹 그렇지 못한 관리자 특히 최고경영자 혹은 소유자의 눈에 들기 위해 직장인의 자세를 망각한 생각을 가진 경우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공부하는 학생 신분이나 진학이나 취업 등을 따로 준비하는 경우는 외부에서 이러한 스스로를 속이는 기만적 행위를 관리할 체계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만일 그것이 사람 간의 직접적 대응이라면 역효과를 발생시킬 위험도 있다. 이러한 사실은 당사자들도 잘 알다보니 이른바 학원 등 나름의 관리 체계 속으로 들어가 수 많은 경쟁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목표한 바를 준비한다. 물론 확률적으로 보자면 쉽지 않는 상황이겠지만 다른 대안을 찾기란 힘들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고립 즉 외로움을 견디기 쉽지 않다. 하지만 스스로 찾은 경쟁에서의 승리라는 환상을 주는 관리 체계에서의 일상은 시간이 지날 수록 불안을 야기하게 된다. 그리고 세상으로 나가게 되면 상대적 비교에 따른 비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다시금 관리 체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 체계의 편안함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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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의외로 주변에게 적지 않게 볼 수 있는 사례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노력한 바는 결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항변하면서 위로해주고 지지해주길 바란다. 그러나 노력이 이미 배신하고 있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다만 인정하지 못할 뿐이다.

그렇다면 노력으로부터 배신 당하지 않으려면 어떤 대응해야 할 것인가 ? 가장 단순한 것은 노력하지 않는 것이겠지만, 일부 천재적 능력을 가진 경우에 한정된 것이니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결국 대부분의 범인(凡人)은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전 포스팅에서처럼 노력의 대상이 노력하는 역량이 도달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야 한다. 더 일상적 표현으로 적자면 자신의 수준을 알고 그 수준에 걸맞거나 추가로 노력한 만큼의 요행이 가미된 수준에서 승부해야 한다. 물론 한 개인에 있어 이러한 자신에 대한 인정은 적지 않게 힘든 고백일 수 있다. 그렇더라도 진정한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정직한 댓가라는 측면에서 좀더 자신에게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어여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 가족이나 주변 모두가 고생이다. 지금 이 순간 그렇다면 어쩌면 본전 생각하지 말고 깔끔하게 포기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인 주변 집단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스스로를 완전히 제어할 수 있는 자제력이 없다면 집단적 학습 체계는 노력을 빙자하여 불안에 대한 안심에 대한 댓가로 먹고 사는 자본주의의 이익 체계을 자신을 가두는 것이다. 만일 자신이 진정 노력했다면 그 결과는 1~2년 사이에 결과로 알 수 있다. 그 이상은 상대적으로 매우 힘들고 어려우며 더욱이 지속하기 조차 쉽지 않다. 한 번의 실패를 준비 부족으로 돌리고, 두 번의 실패를 역량 부족으로 돌린다면 결국 그 다음의 자신의 노력 부족을 탓하게 될 지 모른다. 자신의 노력에 스스로 배신당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노력에 배신 당하지 않았다면-아마도-현실적 목표를 정하고 합리적 방향으로 간 덕분일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항상 기대한 목표에 도달할 수는 없다. 경쟁이라는 것은 피차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경쟁에서 승리한 이를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강조하지만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도 공정했고 노력했다. 부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초라한 변명을 할 필요는 없다. 이제 다른 길로 갈 때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자신의 노력을 폄하하지 말기 바란다.

2022년 1월 14일 금요일

GTD 사용자의 물건 정리 규칙 ?

정리란 무엇인가? 단순하게 보자면 현재 필요성을 기준으로 향후 활용성을 평가하여 상대적으로 효용성 없는 대상을 버리는 것이다. 물리적 대상이라면 공간적 제약이 우선적으로 검토될 것이며, 디지털 형태 파일이라면 관리 효율성을 우선 검토해야 될 것이다. 물론 정리의 효과는 물리적 대상이 확실한 체감 성능을 제공한다. 더불어 정리 자체의 과정도 효과가 좋다. 디지털 파일에 대해서는 생각할 사안이 많으니-자주 언급한 사안이기도 하고-뒤에 다시 생각해보기로 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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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상이든 정리가 되면 시각적으로 확연한 효과를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간의 자의적 타의적 정리 과정을 거친 최종적 결과를 한다미로 적자면, 이 세상에 필요없는 물건은 없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불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쓰임새가 발생하거나 혹은 몰랐거나 잊었던 활용성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그 사이의 긴 시간과 보관 비용으로 볼때 현실적 효용성에 비춰 버리지 않고 보관하는 것과 새로 구입하거나 마련하여 대응하는 것의 차이는 비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짧게는 수년 길게는 십수년이 지난 후, 정리되고 버려진 물건의 필요성이 요구될 때이다. 특히 대상 물건의 기능성을 대체하기 위한 상당한 비용이 초래되거나 심지어 대응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었다. 실제적으로 그 물건이 차지하는 공간적 요구나 관리 비용을 돌이켜 보면 굳이 정리 대상이 되었어야 한다고 생각까지 든다면 너무 비약적인지는 몰라도 정리가 주는 효용성에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몇 번의 경우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초래되기도 하면서 후회한 경우도 있었다.

결국 정리한 것을 단순하게 버리는 것으로 한정할 수 없다. 적절한 보관 역시 정리의 방법이다. 하지만 보관에는 공간적 비용은 물론 관리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운좋게 여유있는 창고가 있긴 하지만 일상 공간과는 제법 떨어진 곳이라 날 잡아 시간 내어 물건을 옮기고 해야 하니 다소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버리는 것 보다는 창고에 보관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사실 창고에 보관하더라도 별도의 관리 체계가 없다면 버리지 않았다 뿐이지 이후 필요가 있을 때 제대로 기억하고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결과적으로 버리는 것이라 비슷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역시나 이 세상에 나와 인연은 맺은 모든 유무형의 물건 가운데 크든 작은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가지는 것 같다. 세상 만물, 문의한 것은 없다. 현명한 생각이 모르지만 반백년 넘은 시간을 흘려 보낸 다음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에 쓴 웃음이 지어지기도 한다.

물론 정리함에 있어 보관과 버림 가운데 선택을 해야 한다면 당연히 버려야 한다. 돌이켜 아쉬운 경우는 억지로 정리의 대상으로 만들어 고민하지 않았나 싶다. 즉 대상을 보고 느낀다면 굳이 정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지만 정리라는 커다른 주제에 묻혀 함께 처리된 경우가 많다. 특히나 상당한 공간을 차지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일상의 사용 빈도가 지극히 낮은 경우라면 일시적으로 정리 상황에 몰리면 제대로 된 가치나 의미를 판단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정리라는 과정이 일상의 정기적 과정으로 관리되지 않고, 프로젝트 수준의 이벤트로 진행하다가 그런 문제를 겪게 될 수 있다.

우리는 내 손이 닿은 물건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진 것인지 잘 알고 있다. 때문에 그 효용성에 대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쉽게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그러한 물건들이 제대로 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일상의 다른 물건과 섞여 있다면 어느 순간 정리의 대상이 되고 만다. 그러나 나름의 의미든 가치든 조금이라도 평가될 수 있는 사안이 있다면 별도의 위치에 자리하든 목록으로 구성된 나름의 관리 대상으로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물건에 대한 자신의 마음, 정성적 판단을 믿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추억의 대상에 대해 그때 기분에 따라 다양한 판단을 내리게 된다. 때문에 정량적 판단이 없다면 쉽게 정리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2022년 1월 7일 금요일

열심히 하는 것 vs. 잘 하는 것 ?

젊은 친구들의 고민과 고뇌에 대한 포스팅 시작에서 잠시 언급한 사안 가장 안타까움 사안이 하나있다. 그것은 열심히 노력한 젊은 친구들의 좌절에 대한 항변으로, 자신은 오랫동안 쉬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일 했음에도 기대한 그리고 예상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이다. 세상의 공정과 평등을 탓하며 가장 크게 좌절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주장에 대한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기성 세대 다운 반대 질문을 보자면, 그렇게 오랫동안 공부하고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그렇다는 것은-비록 열심히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결국 당사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사실 결과에 대한 책임의 가장 큰 부분이 당사자인 것은 분명하다. 경쟁 조건이 아무리 좋더라도 경쟁이라는 상황에서는 실패하는 이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거듭 강조하지만 진학, 취업 그리고 시험에 실패한 많은 젊은 친구들이 열심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그토록 열심히 했다는 사실에 놀라울 뿐이다. 하지만 앞의 두 주장 내지는 사실에 비춰 보자면, 결국 열심히 한다는 자체로서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경쟁이라는 것은 상대적 평가일 수 밖에 없다보니, 결국 정성적 평가 보다는 정량적 평가가 우선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경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경쟁의 평가 기준은 인정하는 지는 의문이다. 심지어 자신의 잘못된 혹은 불합리한 판단으로 인한 좌절의 근거를 공정하지 못한 환경 탓으로 돌리며 자위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본다.

열심히 한다는 것이 진학이나 취업 시험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채용 면접 등을 볼때면 모든 지원자들이 열심히 하겠다고 주장하며, 야근이나 주말 근무는 물론 잦은 출장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한다. 과연 자신들이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알고 하는 지 의문이다. 결국 열심히 한다는 자체로 보자면 모두가 열심히 하지 않는 경우는 없을 지 모른다. 즉 열심히 한다는 자체가 매우 주관적이며 정성적이다. 열심히 하는 것이 기준이라면 모두가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누구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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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열심히 했다는 사실을 자신 혹은 주변에 증명하기 위해서는 과정에 쏟아 부은 시간, 비용 그리고 관련된 크고 작은 인증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것 역시 모두가 동일하게 투자하고 소유했다면 결국 분별력이 있는 평가 요소가 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열심히 하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또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약하자면 자기 최면이나 현실 도피라고 오해받을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주장을 한다고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거나 혹은 노력하지 말하고 하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자세이다. 천재이거나 소수의 운좋은 이가 아니라면 열심히 한다는 자체는 논할 필요가 없는 사안이다.

하지만 노력의 방향과 방법은 노력 자체와는 다른 사안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많은 이들을 보면 자신이 원하는 혹은 지향하는 분야나 기업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 조차 없는 상태에서 이른바 열심히 노력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약간의 수고와 시간만으로 인터넷에서 해당 기업이나 관련 분야의 전망이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음에도 그런 정보를 관리하는 이를 보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그런 정보는 주변에서 듣거나 근거없는 인터넷의 소문으로 파악하는 경우가 더욱 일반적이다. 스스로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경우도 선택의 폭이 매우 제한적이다. 즉 검색 대상의 접근성이 매우 한정적이다. 모두가 같은 사이트를 보고 같은 내용을 준비하는 겪이다. 21세기 스마트 인터넷 시대의 역설적 모습이지 않나 싶다.

결국 엻심히 노력하는 것과 함께 명확한 목표 대상 역시 매우 주요하다. 그리고 따로 언급하겠지만 노력 대상을 통하여 구현하고자 하는 목적 역시 주요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그것은 대학 수학 과정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를 전공 관련 여러 과목을 학습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목표 나아가 목적에 대해 자신이 충분히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러한 대상이 주변이나 타인에 의해 설정되고 무작정 이끌려 가는 모습을 많이 본다. 또한 그러한 문제를 인식하고도 변화의 두려움과 불안으로 헤어나오지 못해 망설이는 경우 역시 많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당장 자신의 수립한 목표를 위한 노력과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자신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껴지는 순간을 너무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정말 자신이 수립한 사안이라면 자신이 충분히 더 옳은 방향으로 수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이의 정량적 투자에 대한 아쉬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방황하게 되고, 악순환의 늪에 빠질 수 있다.

분명 지금까지 노력한 내용은 그 자체로서 나름의 가치있다. 그럼에도 그 노력과 성과를 과감하게 정리해야할 때도 있다. 학습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것은 스스로의 안정을 위한 불필요한 반복이다.

다시 열심히 하는 것 주제로 돌아가 스스로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을 어떻게 규정하고 또 평가할 수 있을까. 학습에 투자한 시간과 비용 그리고 앞에 쌓인 교재들로서 자평할 수도 있지만, 기대한 결과가 얻어지기 전까지 실제적 위안은 될 수 없다. 그 허무함을 위해 또 다른 학습과 체험에 빠지기도 한다. 결국 열심히 한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규정되기 힘들며 평가 역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현재의 불안에 빠진 젊은 친구들에게 필요한 것은 열심히 하는 것은 물론 잘 하는 것이다. 잘한다는 것은 열심히 하는 것에 비해 좀더 정량적 목표를 지향하는 것이다. 즉 크든 작은 결과로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잘한다는 것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열심히 한다는 표현만큼이나 규정하기 어렵다. 반면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판단하고 평가가 가능하다. 이를 통하여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이 잘 진행되고 있는 지를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면 그 평가가 어려운 것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 실행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자신이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잘 하는 있다는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는 노력의 행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해야 한다. 이 질문은 정답과 오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답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질문은 구체적이어야 하고 답은 간결해야 한다. 이러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노력과 학습의 목표가 명확해야 한다. 어떤 경우든 마찬가지이다. 내가 GTD 스타일의 업무 처리 방식을 선호하기 이유가 그런 점에서 상대적으로 효용성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다른 방법의 하나는 반복을 하지 않거나 최소화하는 것이다. 책을 읽든 문제를 풀든 개인적 취미나 취향의 영역이 아닌 업무적 혹은 학습적 사안에 대해서는 반복을 가능한 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 물론 많은 경우 반복을 통하여 학습 내용이 보다 명확하게 이해되거나 자리 잡을 수 있다. 이런 경우의 반복은 학습 효율을 위한 최적화의 과정으로 보기 때문에 단순한 반복과는 구별된다. 예로 한 권을 책을 읽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다시 읽는 경우와 처음부터 책을 다시 읽는 경우는 구별되어야 한다. 당연히 이것 역시 쉽지 않다. 뭔가를 시작할 때 단호한 마음과 현실적 계획이 반드시 확보되어야 한다. 그리고 계속 정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언급한 모든 사안들 역시 목표와 목적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다는 사상누각과 같다. 목표와 목적이란 단어 자체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젊은 친구들은 물론 일상의 쫓기는 많은 이들이 목표가 불명확하거나 목적은 생각해 보지도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삶이나 학습 등의 목표가 없다고,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묻는 이들도 많다. 이미 삶의 상당한 시간을 보낸 이들도 그렇지만 이제 갓 젊은 시기로 접어든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마주하는 경우인 이들도 적지 않다.

목표가 없는 것은 목표를 한번도 제대로 그리고 스스로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고, 또한 그 목표에 대한 나름의 정확한 선택과 평가를 위한 정보를 충분히 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면 대부분 그런 기회를 가지지 못했고 또한 주변에서 그러한 조언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언제나 기회는 주어졌다. 의무 교육 과정의 시기를 제쳐두더라도 대학 생활의 시기가 그러한 준비를 위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특별하게 주어진 기회가 아니더라도 혹은 주변에서 조언할 이가 없더라도 조금만 의식이 있다면 스스로 그런 시간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의식하지 못했다면 주변의 문제가 없지는 않겠지만 역시나 본인의 책임 역시 크다.

이 어려운 문제는 뒤에 따로 언급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열심히 하든 잘 하든 그리고 무엇을 하든 꾸준함과 냉정함을 유지해주는 기반이 된다. 그러니 우선 지금이 힘들다면 그리고 무언가 제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이 고민이고 불만이며 나아가 세상을 탓하고 있다면, 열심히 했음에 대한 댓가가 아닌 제대로 그리고 잘 하고 있는 것에 대한 댓가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긴 노력의 시간 동안 위기의 순간은 계속 반복적으로 다가온다. 그럴 때마다 열심히 하고 있음을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자책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모두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좀더 잘 하기 위해 현재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모두가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1월 3일 월요일

21세기를 시작한 젊은 친구들에게..

2022년, 새해가 오면서 세상은 또 어떻게 변할 지 모르겠다. 이미 반 백년은 넘은 내 삶은 큰 변화가 없겠지만 내 뒤를 걸어 올 수 많은 젊은 친구들의 삶은 어떤 식으로든 내부, 외부의 변화에 따라 바뀌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들의 선택과 무관하게 그들의 삶이 평화롭고 의미 있기를 기원한다.

평생 동안 한 발을 최첨단 산업 분야에 걸치고 있는 입장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 못지 않게 오늘날 젊은 친구들, 또는 새로운 세대의 인식 역시 이전과는 크게 달라졌음을 인식한다. 사실 대한민국 역시 큰 틀에서 세계의 수 많은 나라가 거쳐갔듯 선진국으로 경제적, 사회적 변화에 답습할 수 밖에 없다. 우리만 겪은 일은 아니다. 다만 그들에 비해 조금이라도 한국적이라는 사실은 크든 작든 더 나은 삶을 제공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다른 한 발을 오랫동안 학생 교육과 관련된 분야에 직간접적으로 걸쳐 있는 입장에서 21세기의 젊은 친구들은 과거 시대의-오늘날의 늙은 친구인-젊은 친구들과는 많은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특히 자신 즉 개인 삶에 대한 평가에서 너무나 폐쇄적이면서도 피해 의식이 강하다. 특히 젊은 남성 친구들에게서 상대적으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져 보인다. 물론 일반화할 수 없는 사실이며, 만일 조금이라도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원인에 대한 내 판단은 전혀 과학적이지도 논리적이도 않다. 그저 같은 세대의 젊은 친구들을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봐 온 나름의 느낌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세상에 불만이 참 많은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불만이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불만이다. 물론 일상에서 그 불만을 쉽게 드러나거나 터져 나오진 않는다. 그런 수준의 자의적 결단성을 갖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어떤 이는 꼰대스러운 표현으로 적자면 ‘안방퉁소’나 ‘방구석여포’라고 웃어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위험성은 특히 자신보다 낮은 평가의 대상이라고 자의적으로 판단된 대상에서 대해 잔인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대상을 특정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덕분에 실제 현상은 아주 사소할 수도 있지만, 가끔씩 심각해지기도 한다. 더하여 한 개인의 범주에서 끝날 수도 있지만 집단적으로 표면화되기도 한다.

물론 인류 역사에서 젊은 세대가 구 세대의 눈에 걱정어린 존재로 비치지 않았던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이런 시각도-젊잖은 표현으로서-어른으로서 당연한 것이다라 할 수 있다. 항상 이런 시각은 젊은 세대에게 불만 가득한 비아냥의 대상이긴 했다.

비슷한 예로 일반적 연령에 따른 정치적 성향을 논할 때, 대개 6070대는 당연히 보수화된 세대라고 하지만 돌이켜 보면 한 세대 전에는 가장 진보적인 세대였다. 만일 오늘날의 2030대의 상당수도 역시 어떤 식으로든 정치사회적 성향이 변할 것이다. 나 스스로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경우 20대는 꽤나 보수적으로 성향으로 주변의 질타를 받았다. 그런 시기를 보내고 30대에 이르러서는 그 이상의 진보적 성향으로 바뀌었다. 그 이유나 원인은 정확하게 기억나질 않는다. 굳이 돌이켜 볼만한 사안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까지 생각했던 젊은 그리고 미래 세대에 대한 나만의 걱정 어린 시각에 대한 나름의 생각 나아가서는 평가를 적어보고자 한다. 주변에서 접하는 수 많은 젊은 고민과 불만을 듣고만 있기란 한발 앞선 세대로서 불편하다. 물론 나의 생각이 고민에 쌓인 불만스러운 젊은 친구들을-비록 그렇게 읽힐지더라도-비난하거나 또는 조롱하기 위한 마음은 전혀 없다. 오직 안타까움만이 가득한 심정이다. 이른바 한 세대라는 30년 정도의 시간은 너무도 짧으며 그러한 시간을 보낸 이들에게 남은 시간은 더욱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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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길게 혹은 짧게 적게될 포스팅에 대한 하나의 결론을 미리 적자면, 노력 과정의 가치와 그 결과의 가치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즉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가 주어진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마찬가지로 과정이 부실하거나 불명확하다면 기대한 결과를 예상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노력에 지친 많은 젊은 친구들이 자신을 채용만 해준다면 일을 잘할 것이다 혹은 가게만 차려진다면 멋진 사업을 영위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바램이지 정확한 예측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내가 주장하는 그들이 결코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진학이나 취업을 준비하는 많은 젊은 친구들이 충분히 아니 그 이상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 이들에게 내가 전해주고자 하는 하나의 사안은 노력의 수준이나 정도가 아닌, 방향과 인식에 관한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목표가 불분명하거나 혹은 묵표가 없는 방향으로 향하는 것은 노력의 가치와 무관하다. 또한 목적 없는 목표는 아무리 빨리 손쉽게 도달하든, 반대로 오랜 시간에 걸쳐 어렵게 도착하든 기대한 가치와 의미를 찾기 힘들다. 예로 많은 이들의 진학이나 취업을 목표로 하지만, 실제로 목표한 학교나 기업에 들어간 직후 얼마나 많은 이들이 노력의 가치와 무관하게 떠난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목표에 도달하거나 결과를 성취하지 못한 입장에서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지 모르나, 한 개인의 삶에서는 심각한 미련과 후회를 남길 수 있다. 젊든 혹은 나이가 들었든 주어진 시간 그리고 남은 시간의 길고 짧음을 비교하는 것 자체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그나마 허비하는 일이다.

얼마나 자주 또는 길게 아마도 정작 걱정하는 당사자들에겐 쓸 때 없을 글을 적을 지 모르겠지만, 이 땅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친구들에게 대한 안타까움은 하루가 다르게 짙어져 가는 것 같다. 앞선 세대가 뒤 따르는 세대를 걱정하지 않는 심지어 경쟁의 대상으로 보는 세상이 되거나 반대로 미래의 세대가 구 세대를 경쟁 나아가 타도의 대상으로 보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우도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