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17일 월요일

노력은 배신할 수도 있다 ?

우리가 젊은 친구나 학생들에게 자주하는 말이, 이른바 ‘어떤 노력도 결국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름의 삶을 경험한 바에 따르자면 노력은 언제나 배신한다. 그 이유는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이다. 이전 포스팅에서 열심히 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은 다르다고 적었다. 이것은 입시나 취업은 물론 직장 생활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직원은 없다. 최소한 그렇게 보이도록 열심히 노력한다.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노력과 다르다. 그럼에도 노력해야 하는 혹은 노력하는 척 하는 이유는 결과와 무관하게 노력하지 않는다는 자체로 상사로부터 욕 먹을 가능성을 줄이기 위함이다. 업무나 프로젝트가 기대한 바대로 되지 않았을 때 한번 제대로 욕 먹으면 될 것을 괜히 여유 부리다간 두고두고 욕 먹게 되기 때문이다. 농담 같지만 사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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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이 배신하는 이유는 무능이나 무지의 절대 영역이 단순히 열심히 노력하는 것으로 보완되는 부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굳이 한 인간의 지적 능력을 비하할 생각이나 이유는 없지만, 경쟁이라는 상황 특히 지적 학습을 필요로 하는 영역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정량적으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그 차이를 줄이기 위해 노력이라는-상대가 방심한 틈을 노린-대응을 할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 목표한 결과를 얻기 위해 주어진 상황에 처해진 자신의 역량을 정확하게 파악 혹은 인정을 하지 않으면 시간 낭비, 비용 낭비 그리고 체력 낭비가 되고 나아가 정신적 피해까지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주변의 젊은 친구들은 대부분 자기 주변에 만나는 이른바 직간접적 경쟁 대상에 비해 자신의 우월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자신감이 아닌-자만심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실제 그것은 자만심이라는 보다는 불안감과 초조함을 스스로 감추기 위한 자위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 학습의 자세나 노력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주변 특히 부모님이나 상사로 부터 압박에 시달리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의미없는 노력의 자체가 습관이 된다. 마치 책상에 앉아 있기만 하면 자신은 물론 주변으로부터 무언가를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도록 기능화되었다는 것이다.

업무에서는 이런 경우 상사나 선임이-굳이 실제 옆에 두고 상황을 관리하지 않더라도-다양한 관리 체계를 통하여 실제적 효용성있는 대응을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관리 체계에 갇힌 이들의 답답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직장인이라면 어차피 이런 체계에 갇혀 있으니 전체적 업무 진행을 위한 적응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 적응의 범위에서 각자 나름의 요령을 피우게 되고 직장 상사 역시 같은 경험을 한 바 마찬가지로 유연하게 관리 수준을 조절하게 된다. 간혹 그렇지 못한 관리자 특히 최고경영자 혹은 소유자의 눈에 들기 위해 직장인의 자세를 망각한 생각을 가진 경우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공부하는 학생 신분이나 진학이나 취업 등을 따로 준비하는 경우는 외부에서 이러한 스스로를 속이는 기만적 행위를 관리할 체계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만일 그것이 사람 간의 직접적 대응이라면 역효과를 발생시킬 위험도 있다. 이러한 사실은 당사자들도 잘 알다보니 이른바 학원 등 나름의 관리 체계 속으로 들어가 수 많은 경쟁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목표한 바를 준비한다. 물론 확률적으로 보자면 쉽지 않는 상황이겠지만 다른 대안을 찾기란 힘들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고립 즉 외로움을 견디기 쉽지 않다. 하지만 스스로 찾은 경쟁에서의 승리라는 환상을 주는 관리 체계에서의 일상은 시간이 지날 수록 불안을 야기하게 된다. 그리고 세상으로 나가게 되면 상대적 비교에 따른 비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다시금 관리 체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 체계의 편안함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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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의외로 주변에게 적지 않게 볼 수 있는 사례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노력한 바는 결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항변하면서 위로해주고 지지해주길 바란다. 그러나 노력이 이미 배신하고 있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다만 인정하지 못할 뿐이다.

그렇다면 노력으로부터 배신 당하지 않으려면 어떤 대응해야 할 것인가 ? 가장 단순한 것은 노력하지 않는 것이겠지만, 일부 천재적 능력을 가진 경우에 한정된 것이니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결국 대부분의 범인(凡人)은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전 포스팅에서처럼 노력의 대상이 노력하는 역량이 도달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야 한다. 더 일상적 표현으로 적자면 자신의 수준을 알고 그 수준에 걸맞거나 추가로 노력한 만큼의 요행이 가미된 수준에서 승부해야 한다. 물론 한 개인에 있어 이러한 자신에 대한 인정은 적지 않게 힘든 고백일 수 있다. 그렇더라도 진정한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정직한 댓가라는 측면에서 좀더 자신에게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어여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 가족이나 주변 모두가 고생이다. 지금 이 순간 그렇다면 어쩌면 본전 생각하지 말고 깔끔하게 포기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인 주변 집단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스스로를 완전히 제어할 수 있는 자제력이 없다면 집단적 학습 체계는 노력을 빙자하여 불안에 대한 안심에 대한 댓가로 먹고 사는 자본주의의 이익 체계을 자신을 가두는 것이다. 만일 자신이 진정 노력했다면 그 결과는 1~2년 사이에 결과로 알 수 있다. 그 이상은 상대적으로 매우 힘들고 어려우며 더욱이 지속하기 조차 쉽지 않다. 한 번의 실패를 준비 부족으로 돌리고, 두 번의 실패를 역량 부족으로 돌린다면 결국 그 다음의 자신의 노력 부족을 탓하게 될 지 모른다. 자신의 노력에 스스로 배신당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노력에 배신 당하지 않았다면-아마도-현실적 목표를 정하고 합리적 방향으로 간 덕분일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항상 기대한 목표에 도달할 수는 없다. 경쟁이라는 것은 피차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경쟁에서 승리한 이를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강조하지만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도 공정했고 노력했다. 부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초라한 변명을 할 필요는 없다. 이제 다른 길로 갈 때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자신의 노력을 폄하하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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