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3일 월요일

21세기를 시작한 젊은 친구들에게..

2022년, 새해가 오면서 세상은 또 어떻게 변할 지 모르겠다. 이미 반 백년은 넘은 내 삶은 큰 변화가 없겠지만 내 뒤를 걸어 올 수 많은 젊은 친구들의 삶은 어떤 식으로든 내부, 외부의 변화에 따라 바뀌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들의 선택과 무관하게 그들의 삶이 평화롭고 의미 있기를 기원한다.

평생 동안 한 발을 최첨단 산업 분야에 걸치고 있는 입장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 못지 않게 오늘날 젊은 친구들, 또는 새로운 세대의 인식 역시 이전과는 크게 달라졌음을 인식한다. 사실 대한민국 역시 큰 틀에서 세계의 수 많은 나라가 거쳐갔듯 선진국으로 경제적, 사회적 변화에 답습할 수 밖에 없다. 우리만 겪은 일은 아니다. 다만 그들에 비해 조금이라도 한국적이라는 사실은 크든 작든 더 나은 삶을 제공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다른 한 발을 오랫동안 학생 교육과 관련된 분야에 직간접적으로 걸쳐 있는 입장에서 21세기의 젊은 친구들은 과거 시대의-오늘날의 늙은 친구인-젊은 친구들과는 많은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특히 자신 즉 개인 삶에 대한 평가에서 너무나 폐쇄적이면서도 피해 의식이 강하다. 특히 젊은 남성 친구들에게서 상대적으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져 보인다. 물론 일반화할 수 없는 사실이며, 만일 조금이라도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원인에 대한 내 판단은 전혀 과학적이지도 논리적이도 않다. 그저 같은 세대의 젊은 친구들을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봐 온 나름의 느낌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세상에 불만이 참 많은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불만이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불만이다. 물론 일상에서 그 불만을 쉽게 드러나거나 터져 나오진 않는다. 그런 수준의 자의적 결단성을 갖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어떤 이는 꼰대스러운 표현으로 적자면 ‘안방퉁소’나 ‘방구석여포’라고 웃어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위험성은 특히 자신보다 낮은 평가의 대상이라고 자의적으로 판단된 대상에서 대해 잔인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대상을 특정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덕분에 실제 현상은 아주 사소할 수도 있지만, 가끔씩 심각해지기도 한다. 더하여 한 개인의 범주에서 끝날 수도 있지만 집단적으로 표면화되기도 한다.

물론 인류 역사에서 젊은 세대가 구 세대의 눈에 걱정어린 존재로 비치지 않았던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이런 시각도-젊잖은 표현으로서-어른으로서 당연한 것이다라 할 수 있다. 항상 이런 시각은 젊은 세대에게 불만 가득한 비아냥의 대상이긴 했다.

비슷한 예로 일반적 연령에 따른 정치적 성향을 논할 때, 대개 6070대는 당연히 보수화된 세대라고 하지만 돌이켜 보면 한 세대 전에는 가장 진보적인 세대였다. 만일 오늘날의 2030대의 상당수도 역시 어떤 식으로든 정치사회적 성향이 변할 것이다. 나 스스로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경우 20대는 꽤나 보수적으로 성향으로 주변의 질타를 받았다. 그런 시기를 보내고 30대에 이르러서는 그 이상의 진보적 성향으로 바뀌었다. 그 이유나 원인은 정확하게 기억나질 않는다. 굳이 돌이켜 볼만한 사안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까지 생각했던 젊은 그리고 미래 세대에 대한 나만의 걱정 어린 시각에 대한 나름의 생각 나아가서는 평가를 적어보고자 한다. 주변에서 접하는 수 많은 젊은 고민과 불만을 듣고만 있기란 한발 앞선 세대로서 불편하다. 물론 나의 생각이 고민에 쌓인 불만스러운 젊은 친구들을-비록 그렇게 읽힐지더라도-비난하거나 또는 조롱하기 위한 마음은 전혀 없다. 오직 안타까움만이 가득한 심정이다. 이른바 한 세대라는 30년 정도의 시간은 너무도 짧으며 그러한 시간을 보낸 이들에게 남은 시간은 더욱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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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길게 혹은 짧게 적게될 포스팅에 대한 하나의 결론을 미리 적자면, 노력 과정의 가치와 그 결과의 가치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즉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가 주어진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마찬가지로 과정이 부실하거나 불명확하다면 기대한 결과를 예상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노력에 지친 많은 젊은 친구들이 자신을 채용만 해준다면 일을 잘할 것이다 혹은 가게만 차려진다면 멋진 사업을 영위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바램이지 정확한 예측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내가 주장하는 그들이 결코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진학이나 취업을 준비하는 많은 젊은 친구들이 충분히 아니 그 이상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 이들에게 내가 전해주고자 하는 하나의 사안은 노력의 수준이나 정도가 아닌, 방향과 인식에 관한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목표가 불분명하거나 혹은 묵표가 없는 방향으로 향하는 것은 노력의 가치와 무관하다. 또한 목적 없는 목표는 아무리 빨리 손쉽게 도달하든, 반대로 오랜 시간에 걸쳐 어렵게 도착하든 기대한 가치와 의미를 찾기 힘들다. 예로 많은 이들의 진학이나 취업을 목표로 하지만, 실제로 목표한 학교나 기업에 들어간 직후 얼마나 많은 이들이 노력의 가치와 무관하게 떠난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목표에 도달하거나 결과를 성취하지 못한 입장에서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지 모르나, 한 개인의 삶에서는 심각한 미련과 후회를 남길 수 있다. 젊든 혹은 나이가 들었든 주어진 시간 그리고 남은 시간의 길고 짧음을 비교하는 것 자체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그나마 허비하는 일이다.

얼마나 자주 또는 길게 아마도 정작 걱정하는 당사자들에겐 쓸 때 없을 글을 적을 지 모르겠지만, 이 땅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친구들에게 대한 안타까움은 하루가 다르게 짙어져 가는 것 같다. 앞선 세대가 뒤 따르는 세대를 걱정하지 않는 심지어 경쟁의 대상으로 보는 세상이 되거나 반대로 미래의 세대가 구 세대를 경쟁 나아가 타도의 대상으로 보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우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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